어떤 당나귀가 무거운 짐을 지고 험한 길을 다니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워
비참한 운명을 끝내겠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그러나 사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목숨까지 끊은 당나귀는
더 큰 고통을 받을 뿐입니다. 당나귀가 죽자 사람들은 그 가죽으로 북을 만들었고,
북을 치면서 축제를 열었던 것입니다.
몸이 죽는다고 고통이 끝나지는 않습니다. 고통은 그것을 피하기보다
적극 그 고통을 껴안으며 넘어서려 할 때 끝이 보이는 것입니다.
니체는 큰 고통은 정신의 최후의 해방자라고 했습니다.
고통을 겪으면 평소 귀중하게 보였던 것들이 한순간에
부질없어지고, 평소 가치 없게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무엇보다 소중한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실수와 잘못을 했을 때 뉘우침은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아 주고
현실을 명확히 인식해서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반면에 죄책감은 죄의식에 시달리며 오랫동안 그것만 기억하며
신음하고 거기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자신의 삶에서 원하지 않는 일이 반복해서 일어나면
거기에는 뭔가 배울 것이 있습니다.
그렇게 일어나는 갈등은 우주가 우리에게 뭔가를 배우라고
보내는 신호입니다.
거기에는 깨달음의 보물이 숨겨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관관계에서 늘 같은 방식으로 고통을 겪거나,
돈을 빌려주고 매번 돌려받지 못하는 등 반복적인 갈등이 일어날 때는
관게를 맺는 데 필요한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틀렸으니
다시 입력하라는 신호가 계속 오는 것입니다.
- 정목스님, "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 p 81 발췌
[방향 #19]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0) | 2023.09.29 |
---|---|
[방향 #17] 신비함의 발견 (2) | 2023.09.29 |
[방향 #16]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0) | 2023.09.29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