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적 자서전에서 맥아담스 교수는 성격심리학과 발달심리학 분야에서 발전해온 내러티브 정체성 개념의 형성 과정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맥아담스 교수의 연구를 기준으로 이야기는 198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 시기 맥아담스 교수와 그의 학생들은 에릭 에릭슨의 정체성(identity) 개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였습니다. 초기 삶의 이야기 모델에 대한 연구는 당시 성격심리학 영역에서, 주목받던 빅 파이브(Big Five) 성격 특성 개념에 대한 대안으로 급변하던 정체성 개념을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시도였습니다.
결국 맥아담스 교수의 관심은 고도로 생산적인 미국 성인들이 말하는 구원의 삶 이야기에 집중되었고, 이를 통해 내러티브 정체성 개념은 역사와 문화의 맥락 속에서 더욱 풍부하게 이해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내러티브 정체성에 대한 수백 건의 실증적이고 가설 검증적 연구들이 수행되었으며, 정신 전기 심리학에서도 그 유용성이 입증되었는데,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가 구축한 구원의 삶 이야기나 도널드 J. 트럼프 대통령과 관련한 기이한 연구입니다. 특히 트럼프의 가장 두드러진 심리적 특징은 거의 완전히 내러티브 정체성이 부재하다는 점입니다.
1982년 여름, 맥아담스 교수는 시카고 로욜라 대학교의 신임 조교수로서 자아와 정체성에 관한 대학원 세미나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수업 초반에 학생들과 함께 에릭슨(1963)의 유아기와 사회(Childhood and Society) 일부를 읽으며, 에릭슨의 정체성 개념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민하였습니다. 모두 그 개념에 매력을 느꼈지만, 그것을 명확히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개념이 너무 모호하고 추상적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맥아담스 교수는 학생들에게 만약 정체성을 볼 수 있다면 어떤 모습이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여러 층으로 된 집, 묻힌 유물을 가진 고고학적 유적지, 세 개의 서커스 링, 숲속의 구불구불한 길, 아니면 에프스타인(1973)이 제안한 것처럼 공리와 가설로 구성된 개인 머릿속의 이론 같은 것일 수도 있다고 상상하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에릭슨이 의도한 바를 완전히 전달할 만한 적절한 은유를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 후 몇 달 동안 맥아담스 교수는 에릭슨(1959)의 "청년 루터(Young Man Luther)"를 읽으며, 에릭슨식 정체성 핵심 기준을 도출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을 던졌습니다. 과거를 재구성하고, 현재를 경험하며, 미래를 예상하는 어떤 심리적 형식이 있다면, 그것은 한 개인이 누구이며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다양한 사회적 역할들을 하나로 묶어 동일성과 연속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젊은 시절부터 성인의 세계(일과 사랑의 세계)에 자리잡도록 해주는 형식일 것이라는 상상을 하였습니다. 이 형식은 무엇일까라고 고민하던 끝에 맥아담스 교수는 그것이 바로 이야기일 수 있다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에릭슨이 명시적으로 말한 바는 없지만, 맥아담스 교수에게는 정체성이란 청소년기와 성인 초기부터 개인이 자기-저자(self-author)로서의 심리적 입장을 형성하면서 구축해나가는 내재화되고 진화하는 이야기로 느껴졌습니다. 이 이야기는 배경, 장면, 등장인물, 줄거리, 주제를 포함할 수 있으며, 시간에 따라 변화하지만 변화 속에서도 연속성을 전달하려 노력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개인은 시간이 흐르면서 어떻게 변화하고 성장하는지를 사건의 흐름 속에서 이해하고, 타인(청중)에게 일관성을 전달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일상 대화나 첫 만남, 대학 입학 에세이, 취업 면접 같은 공식적 상황 등 다양한 맥락에서 서술됩니다.
1982년 가을, 맥아담스 교수의 사고는 부끄러울 정도로 과장되었던 때였습니다. 맥아담스 교수는 에릭슨이 정체성에 대해 쓴 모든 것을 내러티브 용어로 재구성할 수 있으리라 상상하였습니다. 마치 탈무드를 연구하는 학자나 꿈을 해석하는 정신분석가처럼, 에릭슨의 글 속에 숨겨진 의미를 독창적으로 파악했다고 느꼈습니다. 그 당시 "내러티브 정체성"이라는 용어가 맥아담스 교수를 만족시키지 못했는데, 이는 다른 종류의 정체성도 있다는 의미를 암시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맥아담스 교수는 모든 것이 이야기이길 바랐습니다. 그리하여 성격심리학과 발달심리학에서 내러티브 정체성 개념으로 발전하게 될 연구의 첫 단계는 맥아담스 교수가 “삶의 이야기 모델”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개념의 구체화였습니다.
1985년에 출간된 "권력, 친밀감, 그리고 삶의 이야기(Power, Intimacy, and the Life Story)"에서(또한 McAdams, 1993 참조) 맥아담스 교수는 에릭슨이 정체성이라 부른 것이 사실상 시간 속에서(과거, 현재, 미래) 개인의 삶을 통합하고, 사회적 공간(개인이 사회 속에서 수행하는 다양한 역할)에서 내재화되는 이야기, 혹은 개인적 신화라고 제안하였습니다.
빅토리아 시대 소설처럼 이 이야기는 삶의 장(chapter)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핵심 장면(예: 절정, 저점, 전환점)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맥아담스 교수는 이를 핵심 사건(nuclear episodes)이라 불렀습니다. 삶의 이야기는 세상이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치, 믿음, 가정이라는 이데올로기적 배경 속에 놓이며, 주인공인 자아는 다양한 사회적 역할이나 자기 고정관념을 반영하는 의인화된 형태, 즉 이미지(imagoes)로 나타납니다. 이 이미지(imagoes)들은 이야기 속에서 서로 상호작용하고 갈등하며 때로는 충돌하여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원동력이 됩니다. 이 이야기에는 예상된 결말도 존재하며, 맥아담스 교수는 이를 (에릭슨의 개념을 다시 끌어와) 생산성 대본(generativity script)이라 불렀습니다. 이는 새로운 시작을 탄생시키는 이상적 결말, 즉 자녀나 유산 등 후대에 남길 어떤 것을 의미합니다.
이야기의 내용과 관련해서, 주도성(권력, agency)과 친밀감(공동체, communion)이라는 주제적 흐름이 강력한 물줄기처럼 텍스트 전반을 관통합니다. 또한 이야기의 구조 측면에서 삶의 이야기 간 내러티브 복잡성 차이가 언급될 수 있습니다. 삶의 이야기 모델의 초기 형태는 선별적으로 다음과 같은 이론과 사상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1) 정신분석 전통(예: Steele, 1982)과 대상관계 이론가(Guntrip, 1971)로부터 차용한 이미지 개념, (2) 1980년대 초반 인문학과 질적 사회과학에서 제기된 텍스트 해석에 대한 아이디어(예: Elsbree, 1982; Hankiss, 1981; Ricoeur, 1970), (3) 머리(Murray, 1938)의 성격 과학적 개인 연구 전통 및 화이트(White, 1981)의 삶 연구 옹호 접근입니다. 이 중 세 번째 영향, 즉 성격 과학의 개인 연구 전통은 맥아담스 교수의 지적 생애에서 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습니다. 맥아담스 교수는 무엇보다 자신을 성격심리학자로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격심리학자들은 심리적 기능에서 나타나는 가장 중요한 개인 차이를 연구합니다. 따라서 권력, 친밀감, 그리고 삶의 이야기에서 맥아담스 교수가 설정한 연구 의제는 삶의 이야기 면담 텍스트를 분석하고, 주제적 흐름이나 내러티브 복잡성 등의 변이를 부호화하는 방법에 대한 포괄적 지침을 제공하였습니다.
맥아담스 교수는 사람들이 외향성/내향성 같은 성격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이 온전한 삶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였습니다. 그 다음 이들이 말하는 이야기 속의 개인 차이를 측정하고, 그런 차이를 사람들의 심리적 구성의 다른 중요한 요소들과 정량적으로 연결하기 위한 연구를 계속하였습니다.
이 초기 연구를 되돌아볼 때, 맥아담스 교수는 첫 책이 담고 있던 풍부한 아이디어와 그 안에 내포된 순진함에 종종 놀라곤 합니다. 지난 30년 동안 맥아담스 교수의 지적 생애를 이끌어온 거의 모든 아이디어는 권력, 친밀감, 그리고 삶의 이야기 어딘가에 처음 등장합니다. 비록 그 아이디어들이 종종 미완성이거나 암시적이었지만 말입니다.
이 책에서 제안된 개념과 방법들은 심리학의 여러 하위 분야는 물론 다른 학문 분야에서도 삶의 내러티브 연구를 위한 방대한 기반을 구축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이 책의 도달 범위가 실제 이해 범위를 초과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맥아담스 교수는 주도성과 공동체라는 두 개의 직교적 차원을 교차시키고,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영감을 받아 12가지 이미지(imago) 유형을 구분하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지나치게 영리한 시도이자 지나치게 형식적이어서, 삶의 경험이 가진 복잡성과 혼란스러움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였습니다. 실제로 이 문제를 책을 쓰면서도 느꼈지만 멈출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초기 맥아담스 교수의 사고는 삶의 이야기를 마치 머릿속에 깔끔하게 정돈된 완성품처럼 실체화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물론 내러티브가 대인관계와 문화적 힘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현실을 과소평가하였습니다. 이는 맥아담스 교수가 성격심리학자로서 마음의 구조를 밝히고 이러한 내적 요인들이 인간 행동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보여주는 일에 전념했기 때문입니다.
성격심리학자로서 맥아담스 교수는 또한 정량화와 가설의 엄격한 검증에 헌신하였으며, 이에 대해서는 변명할 뜻이 없습니다. 맥아담스 교수와 동료들은 결국 삶의 내러티브 주요 주제(예: 주도성, 공동체, 구원, 오염)의 변이를 신뢰성 있게 평가할 수 있는 부호화 시스템을 개발하였습니다. 여러 연구에서 이러한 주제 변이는 외향성이나 신경증 같은 강력한 성격 특성 변수를 통제한 후에도 심리적 웰빙, 정신 건강, 그리고 다양한 중요한 삶의 결과를 예측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습니다.
그러나 삶의 내러티브 연구에서 통계적 검증에 회의적인 연구자들, 특히 포스트모던 감각에 강하게 영향을 받은 연구자들은 이러한 결과에 대해 거의 가치를 두지 않았습니다. 일부 연구자들은 이야기를 부호화하는 과정이 텍스트의 미묘함과 맥락을 제거하고, 풍부한 텍스트를 무미건조한 숫자로 축소한다고 비판하였습니다. 이러한 비판은 테드 사빈(Ted Sarbin)이 그의 탁월한 학문 경력 말기에 느꼈던 감정이기도 합니다.
사빈은 그가 편집한 저서 "내러티브 심리학(Narrative Psychology)"에서 내러티브가 심리학 전반을 아우르는 새로운 근본적 은유가 될 수 있다고 설득하려 했습니다. 그는 맥아담스 교수의 영웅이었습니다. 따라서 맥아담스 교수가 참여한 학회 패널에서 사빈이 맥아담스 교수의 연구를 “어리석은 노력(fool’s errand)”이자 삶의 이야기 연구에서 후퇴한 것이라 비판했을 때, 맥아담스 교수는 상당히 당황하였습니다.
정반대의 문제는 성격심리학에서 발생하였습니다. 많은 동료들의 눈에는 삶의 내러티브를 연구하는 것이 그저 낭만적 탐구처럼 보였습니다. 이야기를 가지고 어떻게 과학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점차 이 아이디어는 어느 정도 지지를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 성격심리학 분야는 특질 이론가와 상황론자 간의 오랜 논쟁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상황론자들은 미셸(Mischel, 1968)로부터 시작하여 행동이 환경적 조건에 너무 구체적으로 맞물려 있어서 성격 특질 같은 내적 요인이 거의 관련성을 갖지 않는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의 연구들은 이러한 주장이 틀렸음을 입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많은 연구들이 (1) 성격 특질 점수에서 나타나는 개인 차이가 장기간에 걸쳐 놀랍도록 안정적이고, (2) 다양한 상황에서의 행동 경향과 강하게 연관되며, (3) 행복, 성공, 이혼, 사망률 같은 중요한 삶의 결과를 예측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성격심리학자들은 성격 특질이 다섯 가지 요인 모델(Five-Factor Model), 즉 빅 파이브(Big Five)로 알려진 모델에 들어맞는다는 생각에 동의하기 시작하였습니다(Goldberg, 1990). 성격 변수의 타당성에 대한 새로운 확신을 바탕으로 연구자들은 성격 특질을 넘어서는 내적 요인들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그 중에는 삶의 이야기 같은 개념도 포함될 수 있었습니다.
맥아담스(1995)를 시작으로 맥아담스 교수는 성격을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 개념으로 제안하였습니다. 이 모델은 성격이 삶의 과정 속에서 다음의 세 가지 발달 경로를 포함한다고 설명합니다. (1) 영아기 기질에서 시작하여 안정된 성격 특질을 형성하는 발달(사회적 행위자로서의 개인), (2) 초기 마음 이론(theory of mind)에서 출발해 삶의 가치와 목표를 명확히 하는 발달(동기화된 행위자로서의 개인), (3) 초기 자서적 기억에서 출발해 성인기에 이르러 내재화된 삶의 이야기를 구축하는 발달(자서적 저자로서의 개인, 즉 내러티브 정체성)입니다. 오늘날 이 행위자/동기화된 행위자/저자 모델(actor/agent/author model)은 전체적 인간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를 위한 통합적 틀을 제공합니다.
맥아담스 교수는 초기 학문 경력에서 삶의 이야기가 그를 지적 망각의 늪으로 이끌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였습니다. 결국 학자로서의 연구가 다른 이들에게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맥아담스 교수는 전통적 성격심리학자로서의 본업을 유지하는 현명한 선택을 하였습니다. 1980년대 맥아담스 교수는 대학원 시절부터 시작했던 친밀감 동기(intimacy motivation)에 대한 경험적 연구를 계속하였습니다.
1990년대에 들어 맥아담스 교수와 그의 학생들은 에릭슨의 생산성(generativity) 개념에 주목하였습니다. 중년 성인이 다음 세대 돌봄과 육성에 얼마나 관심과 헌신을 갖는지를 평가하는 자가 보고 척도를 개발하고 검증하였으며, 이를 통해 생산성에 관한 방대한 경험적 연구 문헌이 축적되었습니다. 이 연구는 다른 연구실에서도 유용하게 사용되었고, 개인 차이에 대한 풍부한 경험적 데이터가 쌓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연구 문헌의 주요 주제 중 하나는 생산성을 실천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중년의 성인이 자신의 삶을 양육, 교육, 멘토링, 리더십, 그리고 다음 세대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다양한 활동에 헌신하려 할 때, 수많은 도전 과제가 나타납니다. 생산성 연구를 계속하면서 맥아담스 교수는 생산적인 성인이 되려면 좋은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1990년대에 노스웨스턴 대학교로 자리를 옮긴 후, 맥아담스 교수는 고도로 생산적인 중년 성인들의 삶의 이야기를 연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의 연구팀은 전문 분야에서 우수 상을 받은 교사나 시카고 지역에서 지역사회 봉사에 매주 수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하였습니다. 이들에게 생산성 척도를 통한 자가 보고 설문을 실시하고, 장시간의 삶 이야기 면담을 진행하였습니다.
이렇게 수집한 데이터는 생산성 척도에서 중간 정도 점수를 받은 유사한 인구학적 특성을 가진 성인들의 이야기와 비교하였습니다. 이후 수백 명의 지역사회 성인을 포함시키며 연구 범위를 확장하였고, 이들은 생산성과 기타 심리적 변인에서 광범위한 차이를 보였습니다. 또한 인종적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성인들을 모집하였습니다.
일련의 질적 사례 연구와 양적 연구를 통해 맥아담스 교수와 그의 학생들은 많은(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고도로 생산적인 성인들이 삶의 이야기를 말할 때 따르는 일반적 내러티브 대본의 윤곽을 발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종종 어린 시절의 장면으로 시작되며, 다음과 같은 대조적 주제를 나란히 놓습니다. (1) 어린 시절 유리한 환경과 축복을 누린 경험(행운, 선별된 존재), (2) 주변 사람들이나 세상 전반의 고통, 괴로움, 억압을 목격한 경험입니다.
이 대조를 “축복받았지만, 세상은 고통받는다” 혹은 “위험한 세상으로 나아가는 특별한 주인공”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성장함에 따라 확고한 가치관을 발전시키며, 때로는 그 가치관이 종교와 연결되거나 명확한 사회적 이념에 기반합니다. 이를 통해 그들의 삶 이야기에는 명확한 이데올로기적 배경이 자리 잡습니다.
모든 삶의 이야기에서 그렇듯, 이들 이야기에도 나쁜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종종 나쁜 일 뒤에는 좋은 일이 뒤따르거나, 부정적 사건이 통찰을 가져오거나 성장, 회복, 발전, 해방, 혹은 어떤 형태의 구원을 의미하는 계기로 발전합니다.
이야기는 계속 전개되며, 미래의 장(章)에 대해 상상할 때, 고도로 생산적인 성인들은 앞으로도 친사회적 활동에 참여하고 친사회적 목표를 추구할 것이라 가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요소를 종합하면, 어린 시절의 유리함, 타인의 고통, 도덕적 확고함, 구원의 연속성, 친사회적 목표라는 다섯 가지 주제가 하나의 패턴을 형성하는데, 이를 맥아담스 교수는 “구원의 자아(the redemptive self)”라고 부릅니다.
왜 고도로 생산적인 성인들은 자신의 삶을 구원의 이야기를 통해 해석하는 경향이 있을까요? 최소한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어린 시절의 유리함과 타인의 고통을 나란히 배치하는 동기적 역동성은 주인공에게 도덕적 도전을 제시하고, 이는 생산적 노력을 위한 내러티브적 정당성을 제공합니다. 즉, “세상은 고통받고 있으나, 주인공은 축복받았다”는 이야기는 주인공이 누린 축복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세상에 무언가를 돌려줄 필요성을 암시합니다. 둘째, 구원의 주제 자체는 나쁜 일들이 종종 일어나지만, 결국 좋은 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주인공은 역경을 극복하였고, 상실과 패배를 통해 성장하였습니다. 생산적인 성인들은 자신들의 생산적 노력이 때때로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자녀가 실망을 줄 수도 있고, 학생들이 거부할 수도 있으며, 지지하는 후보가 선거에서 패배할 수도 있고, 긍정적 유산을 남기려는 노력이 좌절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이야기가 단기적 좌절이 장기적 보상으로 이어지고, 기다리면 구원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해준다면, 이는 심리적으로 생산적 목표를 추구하면서 희망을 유지하기에 유용한 자원이 됩니다. 따라서 구원의 삶 이야기는 고도로 생산적인 성인이 되기 위한 강력한 심리적 자원이 될 수 있습니다.
2000년경, 맥아담스 교수는 네덜란드의 한 학회에서 생산성과 구원의 삶 이야기에 대한 초기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 질의응답 시간에 앞줄에 앉아 있던 한 여성이 “아주 흥미로운 결과이지만, 이 이야기들은 너무 미국적인 것 같다”고 말하였습니다. 맥아담스 교수는 즉각적인 방어심에서 구원의 주제가 문화적으로 보편적일 수 있다는 약한 주장을 내세웠지만,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그 여성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이 이야기들에는 분명 미국적 요소가 있었습니다. 놀라운 일도 아니었는데, 왜냐하면 연구 참가자들이 대부분 유럽계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 맥아담스 교수는 미국 역사와 문화 연구에 몰두하였으며, 특히 문학사와 미국 자서전을 중점적으로 탐구하였습니다. 2006년에 출간된 "구원의 자아: 미국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The Redemptive Self: Stories Americans Live By)"에서 맥아담스 교수는 미국 역사와 문화유산, 미국 자서전과 신화, 할리우드 영화, 일요일 설교, 자기계발서 등을 분석하여 구원의 삶 이야기가 미국 문화에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 기원을 밝혔습니다.
해맥(Hammack, 2007), 프리먼(Freeman, 2011), 맥린(McLean)과 사이드(Syed, 2015) 등의 연구에 힘입어 맥아담스 교수는 구원의 자아를 미국 사회의 주요 문화적 내러티브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미국 중년기에 ‘어떻게 좋은 삶을 살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많은 미국인이 인식하고 열망하는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삶의 내러티브 구축에서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여, 전통적 규범이나 기대, 시간표에서 벗어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적합할 수 있는 다른 이야기를 밀어낼 수도 있습니다. 이는 특정 문화적 내러티브가 사회적 권력과 특권을 강화하거나, 소수자나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억압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앞줄에 앉아 있던 그 네덜란드 여성이 맥아담스 교수를 문화심리학자로 변모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맥아담스 교수는 문화가 내러티브 정체성을 위한 심리-문학적 메뉴를 제공한다고 보았습니다. 각 개인은 그 메뉴에서 자기 경험을 담아낼 수 있는 이미지와 주제를 선택하여 자기 저작(self-authorship)의 도전에 나서지만, 결국 그것은 공동 저작(co-authorship)입니다. 결국 각 개인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셀 수 없이 많은 문화적 원천 텍스트로부터 파생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격심리학과 발달심리학 분야에서 내러티브 정체성 개념을 중심으로 전개된 지적 연구는 고든 올포트(Gordon Allport, 1937)가 오래전에 묘사한 개인적 접근법(idiographic approach), 즉 개별 사례에 대한 심층적 연구 전통을 부활시켰습니다. 내러티브 정체성 개념의 발전은 심리학 연구 전반에서 질적 방법의 성장을 촉진하였으며, 이는 미국심리학회(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의 저널 Qualitative Psychology 창간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개별 사례에 대한 질적 연구를 중심으로 하는 정신전기학(psychobiography)은 역사적 유명 인물들의 삶을 해석하는 데 심리학적 연구와 이론을 적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맥아담스 교수의 정신전기적 연구는 네 명의 미국 대통령—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조 바이든—의 내러티브 정체성을 탐구하였습니다. 특히 부시와 트럼프의 사례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구성하는 이야기들에 대한 흥미로운 통찰을 제공합니다.
2011년에 출간된 "조지 W. 부시와 구원의 꿈(George W. Bush and the Redemptive Dream)"에서 맥아담스 교수는 부시가 이라크를 선제 침공하기로 결정한 이유를 분석하고, 그의 대통령직에서 이 중요한 순간이 가진 심리적 차원을 탐구하였습니다.
침공의 명목상 이유는 대량살상무기(WMD)를 찾는 것, 사담 후세인을 축출하는 것, 그리고 이라크에 민주적 정부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부시의 결정에 내재한 심리적 차원은 무엇이었을까요? 맥아담스 교수는 부시의 성격을 사회적 행위자로서의 특질 차원에서 분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부시의 아버지가 두 살배기였던 첫째 아들에 대해 쓴 편지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 조지 W. 부시는 그를 아는 모든 사람—친구와 적수들—이 열정적이고, 쾌활하며, 활기차고, 사회적으로 우세한 인물로 묘사합니다. 그는 생애 전반에 걸쳐 전형적인 외향형 성격 특성을 보였습니다. 또한 부시는 빅 파이브(Big Five) 성격 특질 중 경험에 대한 개방성(openness to experience)에서 매우 낮은 점수를 보였습니다. 역사가들이 조지 워싱턴 이후 모든 미국 대통령들을 평가한 결과에 따르면, 부시는 외향성은 상위권에, 경험 개방성은 최하위권에 속합니다.
이러한 성향적 특질과 관련된 실증적 연구 결과와 부합하게, 높은 외향성과 낮은 개방성은 부시 대통령이 세계 무대에서 이라크 문제를 활기차고 낙관적이며 자신감 넘치는 행위자로 접근하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특질은 신속하고 극도로 자기확신에 찬 행동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그는 대담하고 공격적인 결정을 내리며, 자신의 결정이 옳다는 점에 의심을 품지 않았습니다.
9/11 테러 이후, 부시 대통령은 자신의 무한한 에너지와 자신감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인생 목표 중 하나를 이루는 방향으로 직감적으로 움직였습니다. 그 목표는 바로 존경하는 아버지의 가장 큰 적들을 물리치는 것이었습니다.조지 W. 부시가 사담 후세인에게 느낀 본능적 증오는 과장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렬하였습니다. 이 감정은 부시 가문이 믿은 신념에 기반하였는데, 이는 1990년대 초반 후세인이 조지 H. W. 부시(부시 대통령의 아버지)에 대한 암살 시도를 지시했다는 증거로 뒷받침되었습니다.
결국 사담 후세인을 축출함으로써 부시 대통령은 대량살상무기로부터 미국과 동맹국을 보호하고, 동시에 개인적 동기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라크 침공은 미국(및 아버지)을 끔찍한 적으로부터 방어하는 것 이상을 의미하였으며, 부시의 보수적 가치관(동정적 보수주의와 신보수주의적 세계 자유 확산 비전)이 이념적 정당성을 부여하였습니다. 즉 이라크 침공은 단순히 적을 물리치는 것을 넘어 해방을 향한 고귀한 전쟁이었습니다.
부시 대통령의 특질과 목표, 가치관은 결국 그가 자신의 인생을 위해 서술한 이야기와 일치하였습니다. 조지 W. 부시는 20~30대 동안 만족스럽고 의미 있는 이야기를 구축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였고, 마침내 40세 무렵 종교적 변화를 경험하고 술을 끊는 결단을 통해 자기절제를 바탕으로 속죄와 회복을 이루는 전형적인 미국식 구원의 이야기를 완성하였습니다.
이 구원의 삶 이야기는 절제, 선함, 안정, 자유를 상징하는, 텍사스 미들랜드라는 기억 속 낙원에서 되찾는 탕자의 귀환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과정과 이야기는 정치적 보수주의와 삶의 이야기에 대한 실증 연구에서 확인된 결과와 긴밀히 맞아떨어집니다.
생산성과 구원의 자아에 관한 연구와 부합하게, 조지 W. 부시의 구원 이야기는 그에게 매우 가치 있는 심리적 자원이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를 생산적 삶의 목표에 집중하게 하였으며, 텍사스 주지사 관저와 백악관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9/11 테러 이후, 부시 대통령은 결정적 저자적 행위(authorial move)를 취하였는데, 바로 자신의 구원 이야기를 미국 전체에 투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신이 젊은 성인기의 혼란을 극복하고 신의 도움으로 선함과 자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면, 미국(신이 선택한 국가) 또한 9/11의 파괴에서 회복하고, 폭군을 물리치며, 선함과 자유를 세계에 확산시킬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부시는 자신의 개인적 내러티브 정체성을 미국이라는 국가 이야기로 확장한 저자로서, 이 이야기가 반드시 행복하게 끝나야 한다는 점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이라크 전쟁에서 얼마나 많은 좌절이 발생하든, 그는 궁극적으로 임무가 완수되고, 승리가 보장되며, 자유와 선함이 회복될 것이라 확신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삶 이야기가 바로 그러한 방식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조지 W. 부시는 한때 그를 해방시켰던 그 이야기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이는 미국, 이라크, 그리고 세계에 운명적 결과를 낳았습니다.
도널드 J. 트럼프 대통령의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 트럼프에게는 내러티브 자체가 부재하기 때문입니다. 부시가 궁극적으로 자신의 구원 이야기에 갇혔다면, 트럼프는 자신의 삶을 시간 속에서 이해하기 위한 내적 내러티브, 구원이든 무엇이든, 애초에 구성한 적이 없습니다. 트럼프는 “단편적인 인간(episodic man)”으로, 시간과 이야기의 흐름 밖에서 살아갑니다. 그는 자신의 지지자들 마음속에 영웅적 이야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예: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정작 자신은 이야기 구조를 가진 내러티브 정체성이 없습니다.
2020년에 출간된 "도널드 J. 트럼프의 기이한 사례: 심리적 평가(The Strange Case of Donald J. Trump: A Psychological Reckoning)"에서 맥아담스 교수는 트럼프에게 내러티브 정체성이 전혀 없거나 극도로 결핍되어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트럼프는 자신을 시간 속에서 발전하는 존재로 보지 않습니다. 과거는 트럼프에게 영향력을 갖지 않으며, 미래도 그를 이끌지 않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싸우는 현재의 순간에 몰두하며, 매 라운드를 이기기 위해 광적으로 싸우는 복서와 같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들(라운드, 에피소드, 하나의 이야기를 이룰 수 있던 개별 장면들)은 결코 이어지지 않고, 그의 마음속에서 줄거리를 형성하지 않습니다.
이 비(非) 이야기의 주인공은 결코 변화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한 장면에서 다음 장면으로 무엇도 가져가지 않습니다. 대신 트럼프는 스스로를 "안정적인 천재(stable genius)"로 생각하며, 영화 "메멘토(Memento)"의 주인공처럼 매일 아침 백지 상태에 가까운 의식으로 깨어납니다. 그러나 영화와 달리, 트럼프는 역행성 기억상실증이나 인지적 결핍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이는 치매와 무관합니다. 트럼프는 항상 이런 방식으로 살아왔으며, 스스로 그렇게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어제의 일을 기억할 수 있지만, 어제는 단지 오늘을 이기기 위한 도구로만 의미를 가집니다.
트럼프의 단편적 삶 접근법은 그를 다른 사람들을 구속하는 도덕적, 규범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롭게 합니다. 오늘 하는 말이 어제나 내일 할 말과 모순되어도 상관없습니다. 비평가들은 트럼프가 거짓말쟁이라고 주장할 수 있고, 이는 사실이지만 트럼프에게 “진실”은 거래적이며, 그의 인간관계처럼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트럼프에게 진실(혹은 옳은 것)이란 현재의 에피소드를 이기기 위해 유용한 것입니다.
월요일에 “A”라고 말하는 것이 그를 승리로 이끈다면, “A”가 진실입니다. 화요일에 “A가 아니다(non-A)”라고 말하는 것이 그를 승리로 이끈다면, “A가 아니다”가 진실입니다. 둘 다 진실일 수 없다고 하더라도, 트럼프는 그 모순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그는 그 모순을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트럼프에게 진실은 단편적이고, 그의 삶 자체도 단편적이기 때문입니다.
트럼프가 현재 순간에 완전히 몰입하는 태도는 사업과 정치 모두에서 그에게 유리하게 작용해 왔습니다. 예를 들어, 그의 단편적 성향은 수백만 명의 열렬한 지지자들 눈에 매우 진정성 있는 인물로 보이게 합니다. 지지자들이 그의 집회나 기자회견을 볼 때, 그들은 트럼프가 온전히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존재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는 미래를 계획하거나 과거와 일관성을 유지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가 내뱉는 말이 모두 거짓이라 하더라도, 그는 지금 이 순간 승리를 위해 해야 한다고 믿는 말을 필터 없이 내뱉습니다.
이는 부끄러움도, 중재도 없으며, 장기적으로 일관성이나 진실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필요성도 없습니다. 의심이나 이성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상태에서 트럼프는 현재 순간 그의 의식을 지배하는 것을 여과 없이 표현하고 터뜨립니다. 그것은 마치 충동적이고 화가 난 아이나 야생 동물처럼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포용하는 원초적 표현입니다. 트럼프의 성격 구성에 내러티브 정체성이 부재한다는 주장은 그의 삶에 대해 기록한 다양한 자료와 사건들로 뒷받침됩니다. 수십 년 전부터 기자들과 전기 작가들은 트럼프에게서 삶에 대한 자기성찰이나 심리적 해석을 끌어내려다 반복적으로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트럼프는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지만, 내러티브 방식은 아닙니다. 대신 그는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거나 자신의 위대함을 선포하며, 자신에게 강인함, 용기, 지능, 힘 같은 훌륭한 특질을 부여합니다. 그는 사회적 행위자로서 승리자일 뿐, 결코 패배하지 않으며, 실수도 없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는 거의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미래를 멀리 내다보지 않으며, 역사의식도 없습니다. 전통적 대통령들처럼 후손, 유산, 미래 세대가 오늘날 미국을 어떻게 평가할지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도널드 트럼프는 로널드 레이건이나 버락 오바마 같은 대통령들이 즐겨 사용했던 고귀한 담론 방식으로 말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표현도 하지 못합니다. 1990년대에 뉴요커(New Yorker)지에 글을 쓰던 마크 싱어(Mark Singer)는 트럼프와 많은 시간을 보내며 그의 내면을 드러내도록 유도하였습니다. “아침에 면도를 할 때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스스로에게만 품고 있는 사적인 감정이 있습니까?”라고 물었지만, 트럼프에게 이런 질문들은 전혀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는 답할 수 없었습니다. 싱어는 결국 트럼프가 “영혼의 울림에 방해받지 않는 존재”라는 놀랍고도 기이한 상태를 성취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트럼프의 첫 번째 책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 대필 작가였던 토니 슈워츠(Tony Schwartz)는 “트럼프는 그가 만난 어떤 인간 모델에도 들어맞지 않았다”고 말하였습니다. 슈워츠에 따르면 트럼프는 어린 시절에 대해 거의 아무 기억도 없으며, “사적인 트럼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2016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트럼프의 수락 연설을 보도한 뉴욕타임스 기자는 “40년간 대중의 시선 속에 있었지만, 그날 밤 트럼프는 어린 시절 이야기나 격동의 경력에서 얻은 교훈, 혹은 외형적 허세 뒤의 내면적 갈등을 통해 미국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연설 중 하나였을 그 순간, 트럼프는 자신의 개인적 삶과 경력을 깊이 파고들어 회의론자들에게 ‘살아 숨 쉬는 인간’으로 보이게 할 수 있는 기회를 거부하였습니다. 트럼프는 자신을 살아 숨 쉬는 인간으로 묘사하는 데 관심이 없습니다. 그의 마음속에서 그는 오히려 슈퍼히어로에 가깝습니다. 대통령직을 맡기 직전, 트럼프는 보좌관들에게 백악관의 하루하루를 텔레비전 쇼처럼 생각하라고 말했습니다. 그 쇼에서 그는 적들을 물리치는 주인공이었습니다. 이는 그가 피플(People)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인간은 가장 사악한 동물이며, 인생은 승리와 패배로 끝나는 전투의 연속”이라고 묘사한 인생 철학과 일치합니다. 트럼프에게 매일은 하나의 전투이지만, 그 전투들은 명확한 내러티브 구조를 가진 전쟁으로 발전하지 않습니다. 전형적인 전쟁은 명확한 적, 안정된 동맹, 분명한 대립 원인, 그리고 전쟁이 언젠가 끝나고 역사의 일부로 이야기될 것이라는 전망을 지닙니다.
그러나 트럼프에게 인생은 끝없는 전쟁일 뿐이며, 진전이나 방향성이 없습니다. 그는 오늘을 이기기 위해 격렬히 싸운 뒤 잠이 들고, 다음 날 아침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합니다. 이것이 트럼프가 항상 살아온 방식입니다. 그는 전투적 현재에 완전히 몰두하며, 내러티브 시간과 역사적 흐름 밖에서 살아가고 싸웁니다. 그는 “전능한 존재(I AM)”로서 결코 변하지 않고, 발전하지 않으며, 그저 존재할 뿐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40년간의 회고에서 맥아담스 교수는 1982년 여름 대학원 세미나에서 학생들과 나눈 토론이 어떻게 내러티브 정체성과 구원의 자아 개념에 초점을 맞춘 연구 프로그램으로 이어졌는지 보여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에릭 에릭슨(1963)의 정체성 개념에 대한 집착에서 시작되었으며, 맥아담스 교수는 정체성을 이야기로 파악하였습니다. 이는 마치 마음속의 빅토리아 시대 소설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완전히 발전된 삶의 이야기 모델(McAdams, 1985)은 결국 내러티브 정체성이라는 더 정교한 개념으로 변모하였습니다. 내러티브 정체성은 한 사람이 자신이 누구이며 어떻게 그러한 사람이 되었는지를 이야기로 이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초기 연구에서 맥아담스 교수는 내러티브 정체성을 자기완결적 정신 구조로 실체화하려 하였으나, 그것은 자아의 성취인 동시에 문화적 산물임이 드러났습니다. 내러티브 정체성은 심리사회적 구성물입니다.
개인들은 방대한 문화적 원천에서 재료를 취하여 자신의 삶 경험을 이야기 형태로 번역합니다. 이 이야기들은 이야기꾼 공동체 속에서 공동 저작되며, 삶의 이야기는 개인에게 의미와 목적을 부여하지만, 그 의미가 항상 복지에 최선인 것은 아닙니다. 특정 주요 문화적 내러티브는 삶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억압할 수 있으며, 특히 소수자나 경제적으로 불리한 사람들에게 더 그렇습니다.
구원의 자아는 미국 사회에서 주요 문화적 내러티브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실증적 연구들은 고도로 생산적인 미국 성인들이 자신의 삶을 구원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경향이 있음을 일관되게 보여줍니다. 그러나 같은 유형의 이야기가 자기 의롭고 순진한 것으로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조지 W. 부시의 경우 그가 중년 초기에 구축한 구원 이야기는 그를 생산적 삶의 목표로 이끌었지만, 궁극적으로는 무분별하고 파괴적인 전쟁을 시작하게 된 원인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부시의 사례는 맥아담스 교수의 학문적 여정에 대한 경고적 메시지를 담고 있을지 모릅니다. 젊은 시절 부시는 자신의 삶에서 의미와 일관성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고, 한 번 구원의 자아를 붙잡고 나니 결코 놓지 않았습니다.
흥미롭게도 맥아담스 교수의 심리학자로서 발전 과정 또한 되돌아보면 유사한 역동성을 보입니다. 1970년대 후반 성격심리학을 전공하던 대학원생이었을 때, 해당 분야에 만연하던 지적 혼란과 아노미(anomie)에 절망하였습니다. 상황론적 비판(situationist critique)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 많은 경험주의적 심리학자들은 성격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행동이 언제나 상황의 함수라면, 자아 내부에 안정적이고 일관된 무엇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맥아담스 교수는 상황의 영향력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상황에 다르게 반응한다는 점에서 성격이란 개념을 유지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1980년대 중반 성격심리학자들이 특질(dispositional traits)의 힘을 재발견했을 때, 맥아담스 교수는 크게 환희하였습니다. 특질은 개인에게 어느 정도 고유성과 일관성을 부여하였고, 삶의 이야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삶의 이야기의 존재는 인간 삶에 일정한 일관성이 있음을 증명하고,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시간적 통일체로 만들고자 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라는 기이한 사례가 등장하면서, 이 모든 규칙이 무시될 수 있음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트럼프는 내러티브 정체성이 거의 결여된 채 시간과 이야기 흐름 밖에서 살아가는 극단적 사례입니다.
그를 제외하면, 40년간의 삶의 이야기 연구 끝에 맥아담스 교수는 사람들의 내러티브 정체성이 빅토리아 시대 소설처럼 깔끔하게 형성되는 경우가 거의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일관성은 존재하지만, 그것이 "미들마치(Middlemarch)"나 데이비드 코퍼필드(David Copperfield) 수준만큼 크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마음속에 여러 이야기를 가지고 있으며, 이들 이야기는 종종 불일치하고, 특정 내러티브 상황에 맞추어 조정됩니다. 이야기는 담론적 공간에서 연출되므로, 내러티브 정체성은 완성된 소설이라기보다 느슨하게 연결된 단편 소설집, 즉 자아의 앤솔로지(anthology)에 가깝습니다.
서로 다른 이야기들은 반복되는 주제나 선호하는 줄거리, 등장인물 묘사를 공유하며, 개인 삶에 어느 정도 일관성을 제공합니다. 다만 그 정도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대학원 시절부터 일관성에 집착했던 심리학자로서, 맥아담스 교수는 서로 다른 이야기들 사이에서 유사점을 찾아내고 일관성을 드러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단절과 모순도 인식하지만, 일관성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상황 변수가 특질을 압도하는 사례들도 있지만 대체로 넘어가곤 하였습니다.
심리학자로서 그리고 이야기를 만드는 인간으로서, 맥아담스 교수와 같은 연구자들은 분야와 입지를 선택합니다. 1982년 가을 이래로 맥아담스 교수는 삶의 이야기들이 갖는 종합적이고 통합적인 특징에 에너지를 집중해 왔습니다. 다른 학자들은 내러티브를 다른 방향으로 발전시키며, 때로는 맥아담스 교수의 연구를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맥아담스 교수는 여전히 에릭슨의 정체성 개념과 마찬가지로, 이야기가 인간 활동에 의미와 목적을 가져다준다는 생각을 고수합니다.
이야기들은 사람들의 삶을 통합하고 일관성을 부여하는 데 도움을 주며, 이것이 맥아담스 교수에게 항상 핵심적 통찰이었습니다. 이러한 통찰은 맥아담스 교수의 연구를 그의 의식적 통제 범위를 넘어서는 방식으로 형성해왔습니다.
원문 : McAdams, D. P. (2022). Narrative identity and the redemptive self: An intellectual autobiography, with occasional critique. Narrative Works: Issues, Investigations, & Interventions, 11(1), 6–23.
https://www.tingeofsoul.co.kr/143/?idx=51
시대적 조류 변화와 스타벅스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진화 (4) | 2024.12.19 |
---|---|
정체성 붕괴 시대, 서사적 정체성(Narrative Identity) 비즈니스 가능성 검토 (2) | 2024.12.15 |
(번역) 자기 이야기의 힘 : 심리학자 댄 맥애덤스와의대화 (1) | 2024.12.12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