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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_스토리 #2] 스토리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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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djourney - 2023.7.9

 

모든 비지니스 전략은 인간의 정신을 타깃으로 삼는다. 인간의 정신은 쉼 없이 스토리를 만들고 소비하도록 진화한 생물학적 엔진이다. 그러니 소통에 스토리를 접목하는 것은 단순히 영업을 잘하는 기술이 아니라, 소비자의 관심을 끌어 붙잡아 두고 보상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열쇠다. 이미 여러 차례 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듯, 마케팅이 메시지를 스토리화하면 소비자는 귀를 기울인다. 산만함이 팽배한 시대에 소비자의 관심과 주목만큼 마케터에게 귀중한 자산이 또 있을까?

 

관객의 관심을 끌어 잡아 두는 스토리의 고유한 능력을 되새김하는 차원에서 스토리의 진화가 처음 시작된 날로 거슬로 올라가 보자. 수만 년의 시간과 인류 화석을 연구한 다양한 과학적 해석을 조합해 3막의 모험 서사로 구성해 보았다. 의식의 탄생에서 출발해서 정신의 생존 투쟁으로 고조화되다가 스토리화된 생각의 승리로 절정에 이르는 스토리다. 

 

 

1막 : 최초 인간의 생각

수억 년 동안 수십억 생명체의 신경계는 대단히 복잡한 체계로 진화했다. 그러다 지금으로부터 200 ~ 300만 년 전 태양계의 극심한 변화를 겪으며, 이족 보행 유인원의 중추신경계가 3000년에 1밀리리터의 평균율로 뇌백질과 회백질을 증가시키기 시작했다.

 

브로드만 영역 10으로 알려진 전전두엽 피질의 가장 앞 부분은 이마 바로 뒤에 위치한다.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이 6층 구조로된 피층의 크기와 망상 구조가 엄청나게 팽창한 까닭에 두대골의 크기가 커지지 않을 수 없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변이에 변이를 거듭하며 인류의 대뇌는 1리터 부피의 덩어리로 부풀어 오르고 1,000억 개의 세포가 서로 연결된 아주 복잡한 구조를 이루게 되었다. 결국 한계점에 다다른 인간의 뇌에서 처음으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생각이 터져 나왔다.

 

'나'라는 무언의 자각은 갑자기 뇌를 정신으로, 동물을 인간으로 바꾸어 놓았다. 동물은 주위 대상에 반응하지만, 인간의 뇌는 스스로를 대상화했다. 그렇게 해서 인간의 의식이 사실상 둘로 쪼개졌다.

 

자기 인식은 가벼운 정신 분열과 비슷하다. 내 안의 나를 들여다보며 '이런 멍충이!'라고 생각할 때, 누가 누구에게 화를 내는 것일까? 스스로에게 흡족한 마음이 들 때, 누가 누구의 어깨를 두드리는 것일까? 나에게 말을 걸 때, 듣고 있는 것은 누구일까? 이렇게 이런 내면의 거래가 작동하는 것일까?

 

이렇게 설명해 볼 수 있다. 활발히 움직이는 나의 두뇌 뒤편, 인간성의 궁극적인 핵심에는 하나의 의식이 나의 모든 사고와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 이 핵심 자아가 말하자면 내 정신의 '주인'이다. 마치 내면의 프리즘을 통해 보듯 이 주관적 자아는 또 다른 자신으로 분열되어, '나'라는 도플갱어가 세상에 나가 생각하고 선택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다. 핵심 자아는 외적 자아에 대해 긍정 혹은 부정의 판단을 내리고, 외적 자아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려 든다.

 

이상하게 보일지 몰라도 핵심 자아의 자기 관찰은 당연하고 또 지속적이다. 오늘 밤 꿈을 꾸는 동안 나는 자기를 인식하는 관객이 되어 마치 기묘하게 비현실적인 영화의 배우처럼 내 꿈 안에서 연기하는 나 자신을 지켜볼 것이다. 

 

잠들지 않고 깨어 있다면, 지금처럼 자기 관찰은 이미 진행 중이다. 스스로 '나는 누구인가?' 하고 질문을 던져 보자. '나'라는 의식이 내 존재의 밑바탕에서부터 고개를 들 것이다. '나 자산의 주인으로서 나'라는 인식이 전면에 내세워진 내 의식의 뒤편을 서성이며, 깨어 있는 내 생각을 관찰하고, 이 글을 읽는 나를 지켜보며, 내 상태에 주목한다. 굳이 돌아볼 필요는 없다. 내 안의 나를 정면으로 마주할 수는 없지만, '나'라는 존재가 언제나 그 자리에서 항상 나를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최초의 인간 정신에 자기 인식이 침입할 때 따라 들어온 것이 있다. 고립감이라는 갑작스럽고 강렬한 느낌이다. 자의식을 얻은 대가는 본질적으로 혼자인 삶이다. 동료 인간을 비롯한 다른 모든 생명체들과 나 사이에 일정한 거리가 벌어진다. 최초로 '내 존재'를 인식한 그 태고의 순간 이후로 정신은 고독과 함께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자기 인식을 통해 인간에게 고유한 것, 시간이라는 무시무시한 존재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최초의 인간은 느닷없이 홀로 시간의 강물에 표류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2막 : 두 번째 인간의 생각

'나는 존재한다'는 인식에 뒤이어 두 번째 인간의 생각이 등장했다. '.....그리하여 언젠가 시간 속에서 내 시간은 끝이 날 것이다.'하는 생각. 자기 인식이 탄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시간 인식이 인간의 정신에 밀려들며 두려움을 싣고 왔다.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모를 때 느끼는 감정이 공포라면, 두려움은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알고 있는데 막을 도리가 없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태엽 풀린 시계처럼 언젠가 우리는 시간이 멈추리라는 생각에 담긴 것은 영락없는 두려움이다.

 

자기 인식이 생기기 전까지 우리의 선신세(신생대 제3기의 마지막 시기) 선조들은 여느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영속성이 주는 실체적 안락을 누리며 살았다. 그러나 '나는 존재한다.'는 의식이 원초적 본능에서 자기 인식을 분리시키면서부터 고통스러운 미래에 대한 상상이 갓 깨어난 인간의 정신을 관통했다. 게다가 정신의 발견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미래만 불확실한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물의 거죽을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됐다. 보이는 그대로인 것은 아무것도 없으므로.

 

'보이는' 것은 우리가 보는 것, 듣는 것, 사람들이 말하는 것, 사람들이 하는 행동의 감각적 허울이다. '존재하는' 것은 보이는 것의 이면에 감춰져 있다. 진실은 일어나는 일에 있지 않고 일어나는 일이 어떻게 어째서 일어나는지에 담겨 있다. 보이지 않는 삶의 인과 관계를 설명해 줄 과학도 종교도 없는 상황에서 혼돈과 불가사의와 무의미함과 덧없음에 삶이 살기 힘들어질 때, 느닷없이 자기 인식에 이른 정신은 분명 혼란으로 요동쳤을 것이다. 정신은 어떻게든 존재를 이해할 방도를 찾아야 했다. 

 

 

3막:스토리를 만드는 정신

그때 구조에 나선 것이 스토리다. 자연 선택은 유전자 하나하나마다 우리의 DNA에 스토리를 지어내는 정신적 메커니즘을 심어 놓았다. 데이비드 버스의 말마따나 스토리 메이킹 "......진화된 심리적 메커니즘으로서, 정보의 한 조각을 가져다 의사결정 규칙에 따라 역사적으로 적응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산출물로 변형시키고자 유기체 안에서 생성된 일련의 절차를 말한다. 심리적 메커니즘이 현생 유기체 내에 존재하는 이유는 선조들의 특수한 적응 문제에 대해 대체로 성공적인 해결책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유기체가 당면한 문제는 혼돈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정신의 스토리화 메커니즘은 이렇게 작동한다. 하루 종일 신체는 가공되지 않은 수백만 조각의 감각적 자극을 흡수한다. 의식의 층위 아래 어디쯤에선가 정신이 이 덩어리를 자세히 살펴 유의미한 것과 무의미한 것을 가려내는 결정 규칙(decision rule)을 부과한다. 정신은 모든 데이터의 99%를 무시하고 관심을 끄는 1%에만 집중한다. 

 

그렇다면 관심을 끄는 것은 무엇일까? 변화다. 상황이 일정하게 안전한 상태를 유지하는 한 우리는 삶의 용무를 계속 이어 가지만, 변화가 닥치면 갑자기 위협이나 뜻밖의 행운에 노출된다. 어느 쪽이 됐든 우리는 반응한다. 잠재의식의 생존 장치가 작동하기 시작하는데, 이중 가장 으뜸이 바로 스토리 메이킹이다. 핵심 자아가 정신을 채근해 곧 바로 이 사건을 스토리화하게 만드는 것이다. 

 

뇌에서 브로드만 영역 10에 위치한 스토리화 근육의 몸풀기가 시작된다. 이때 정신이 이전의 사건들을 소환해 가능한 결과를 예측하면서, 과거가 미래로 흘러든다. 정신은 이전의 유사한 일들을 현재의 경험과 비교해서 지금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혹시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파악해 둔다. 

 

물론 시시콜콜한 변화들을 모두 스토리로 전환하지는 않는다. 진화를 거치며 유의미한 역학적 변화에만 집중하는 법을 배운 덕분이다. 

 

스토리화된 생각은 모든 사건을 핵심 가치의 측면에서 해석한다. 하지만 스토리 창작에서는 '가치'라는 단어가 성공, 진실, 충성, 사랑, 자유 등의 단일 개념을 지칭하지 않는다. 이런 말들은 가치의 절반을 가리킬 뿐이다. 역학적 사건들은 단일 요소로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긍정/부정으로 대립하는 한 쌍의 가치값으로 영향을 미친다. 성공/실패, 진실/거짓, 충성/배신, 사랑/증오, 옳음/그름, 부/가난, 삶/죽음, 승리/패배, 용기/비겁, 강함/약함, 자유/속박, 흥분/권태 등등의 경험을 중심으로 우리 삶을 회전시킨다. 가치가 있어야 스토리의 혈액이 순환한다.

 

사건이 의미 있으려면, 최소한 하나 이상의 가치값에서 변화가 일어난 것을 정신이 감지해야 한다. 이유야 간단하다. 어떤 상황에 걸린 가치값에 변화가 없다면, 일어나는 일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움직임이라는 뜻이다. 반면 긍정에서 부정으로, 혹은 부정에서 긍정으로 가치값이 변한다면(예컨대, 사랑에서 증오로 혹은 증오에서 사랑으로, 승리에서 패배로 혹은 패배에서 승리로), 그 사건은 유의미해지고 감정이 차오른다. 잘 짜여진 스토리는 감정이 충전된 가치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 가기 때문에, 그 의미가 우리의 기억에 뚜렷이 새겨지는 것이다. 

 

허구적인 사건이 실제 벌어진 일보다 더 기억에 남을 수 있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잘 짜여진 스토리는 가능한 행위 패턴을 마치 실제 경험의 기억인 양 머릿속에 심어 놓는다. 이것이 장차 미래의 행동을 구성할 그물망이 된다. 현실에서는 가치가 뭐가 뭔지 알 수 없어 사건이 유야무야 잊히기도 하지만, 허구 속의 정서적 충전은 명확하고 강혁해서 미래의 유력한 기준점으로 기억 속에 단단히 자리 잡는다. 

 

삶을 이해하기 위해, 스토리를 만드는 인간의 정신은 의미로 충전된 사건들을 원인과 결과로 연결하고 통합해서 시간 속에 꿰어 놓는다. 그래야 스토리가 끝날 때 그 의미가 이상적으로 이해될 뿐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충분히 전달된다. 

 

가령 가장 단순한 형태의 스토리는 이렇게 구성된다. 스토리가 시작될 때, 중심인물의 삶은 핵심 가치(예컨대, 행복/슬픔처럼)를 중심으로 비교적 균형이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그때 이 균형을 뒤엎는 어떤 일이 발생해 핵심 가치의 값이 긍정이나 부정 어느 한쪽으로든 명확하게 바뀐다. 이를테면 중심인물이 사랑에 빠질 수도 있고(긍정) 사랑이 식을 수도 있다.(부정) 그러면 인물은 삶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행동에 나서고, 그 순간부터 원인과 결과로 이어진 일련의 사건들이 시간을 따라 움직이며 핵심 가치가 긍정에서 부정으로 다시 부정에서 긍정으로 오가도록, 점진적이고 역동적으로 흔들어 놓는다. 스토리의 절정에서 최종 사건으로 핵심가치의 값이 절대적으로 바뀌면서 인물의 삶은 균형을 되찾는다

 

진화하는 정신이 통찰이라는 능력을 습득하면서, 비로서 정신은 범람하는 실제 사실을 간소화해 감당할 수 있었고, 이를 효율적인 인간 크기의 현실로 만들 방법을 손에 넣었다. 스토리의 구조를 갖춘 사고과정이 어지럽고 무의미한 존재의 불협화음에 질서와 통일성과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생각의 힘으로 인류는 목적과 균형을 잃지 않고 생존하는 배울 수 있었다. 케네스 버크의 말이 옳다. 스토리로 우리는 살아갈 도구를 얻는다. 


[원문]

로버트 맥키&토머스 제라스, "스토리노믹스",2018, p 59 ~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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