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자료 #1] Why Korea's moon jar is so iconic 번역

데이타베이스/문화

by TOS_lab 2023. 7. 4. 10:02

본문

728x90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기물은 이제 소박함과 식민지 이후 한국의 국가 정체성을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현대에 들어서 신규 예술가들은 이 상징적인 조형물을 재해석하고 있습니다 .

수백 년의 역사를 지니며 그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재인 한국의 달항아리는 여전히 한국의 도예가들과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기고 있습니다. 런던에서 달항아리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로이드 최는 달항아리는 커다란 흙 밥그릇 모양 두 개의 테두리를 이어붙인 단순한 형태로 성형 후  "자연의 법칙"에 따라 그 모습이 완성된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백토에 튜명한 유약을 바르기도 하지만 유약없이 가마에 구워서 보름달처럼 보이게 합니다.

 

달항아리는 미적으로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정체성을 잘 드러냅니다. 달항아리는 조선 시대(1392~1910년)에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한국은 신유교적 신념 체계를 따랐습니다. 기원전 6세기부터 5세기까지 중국 철학자 공자에 의해 전파된 단순함, 겸손, 겸손, 순수함, 검소함이라는 유교의 사상은 중국을 넘어 한국, 일본, 베트남으로 퍼져나갔죠.

이 지역의 도자기는 대부분 평범한 백자였지만, 18세기에 들어서면서 한국의 양반들은 한국적인 정체성이 뚜렷한 새로운 도자기를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달항아리는 이러한 유교적 이상을 구현하면서 시대의 상징물이 되었고 지금과 같은 중요성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17세기와 18세기 한국의 미학은 완벽함보다는 자연주의와 자연스러움이 강조하였습니다. 당시의 미학은 "자연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능력"이었다고 최 대표는 말합니다. 달항아리는 이러한 사고방식이 투영됩니다. 달항아리의 디자인은 미니멀하며 유사하지만 각각의 개성 또한 담겨있습니다. 모두 수작업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소성 과정에서 수축과 처짐이 발생하여 각기 다른 비대칭적인 모양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운데 부분에는 두 개의 반구형 반쪽이 결합된 수평 이음새가 눈에 띄었습니다. 한편 구형의 표면은 흰색으로, 한국에서는 소박함과 금욕주의를 상징합니다. 이는 장식이 많은 중국 도자기와는 대조적입니다. 

항아리는 의례적인 역할과 실용적인 역할을 동시에 수행했다고 최 대표는 설명합니다. 궁궐에서는 외국 귀빈이 방문했을 때 화병으로 진열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쌀과 같은 곡물 또는 건물을 보관하는 용도로도 사용되었습니다.

달항아리가 한국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문화재로 떠오른 것은 20세기 시대적 배경과 관련됩니다. 한국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 제국에 병합되었습니다. 점령 기간 동안 한국인들은 독립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한국어 사용은 금지되었으며, 한국인들은 전쟁을 위한 노동력과 태평양 전쟁의 군인으로 강제징집되었습니다. 식민지 일본과 한국의 식민지에 기생히던 지식인들은 조선의 문화와 예술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묘사했고, 조선의 문화와 자원은 수탈당했습니다.

 

스미소니언 국립 아시아 미술관의 일본 미술부 큐레이터인 솔 정은 "달항아리가 한국의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것은 1945년 일본이 미국에게 항복하면서 35년간의 식민 통치에서 해방된 것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달항아리가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과 동의어가 된 것은 1950~53년 한국전쟁(북한이 남한을 침공한 시기) 이후라고 그녀는 덧붙입니다.

전후 식민지 시대의 한국 도예가 1세대는 새로운 시각으로 달항아리를 연구하고 재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선구적인 추상화가 김환기는 달항아리를 수집하여 그림에 등장시켰고, '달항아리'라는 용어를 만든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최영욱과 같은 다른 현대 화가들도 달항아리를 소재로 삼았습니다.

 

문스트라이크(Moonstruck)


한편, 항아리는 서양에서도 새로운 팬을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홍콩에서 태어난 영국 도예가 버나드 리치는 20세기 전반기에 일본에서 오랜 기간 거주하며 활동했고, 한국에도 방문했습니다. 그는 현재 런던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지름 44.5cm의 달항아리를 비롯해 한국의 도자기와 가구를 수집했습니다.

 

<출처> 뉴시스,&nbsp; 23회 동계올림픽 성화 점화, 2018.02.09

 

달항아리의 보편성, 대중성, 문화적 정체성은 "달항아리를 한국적 오브제"로 떠올랐습니다. 이제 달항아리는 한국 미술을 소개하는 박물관 전시와 갤러리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정 관장은 말합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개막식 때 불을 밝힌 올림픽 공식 성화가 기둥 위에 거대한 달항아리 모양으로 제작되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달항아리는 한국 도예가들에게 상징적인 의미로 자리잡았습니다. "작가들은 달항아리를 '다루어야' 할 의무감을 느낍니다."라고 최 작가는 말합니다.  "달항아리는 현대 도예가들의 개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부인하긴 어렵습니다. 누구나 달항아리를 만들고 싶어 하기 때문에 자신만의 예술적 영감은 묻혀지고 있죠.". 하지만 그녀는 이는 해결되어 가는 과정이라는 점도 덧붙입니다. "이제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형태를 버려야 합니다."

그녀의 전시회 '달항아리: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에서는 6명의 현대 한국 작가들이 전통 그릇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창조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현대의 거장 이수종과 이기조의 작품과 윤주철, 박성욱의 작품, 그리고 젊은 여성 작가 최보람과 곽혜영의 작품이 함께 전시됩니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들이 이 주제에 접근한 이유를 설명하는 작업 과정의 영상이 함께 상영됩니다.

이수종 작가는 영상에서 달항아리는 완벽한 원이 아닌 비대칭적인 형태를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도자기 작품과 비교했을 때 독특하다고 설명합니다. "제 달항아리가 더욱 독특한 이유는 두 개의 큰 그릇이 연결될 때 생기는 자연스러운 무늬를 의도적으로 남겨두었기 때문입니다."

 

박성욱 장인은 조선 초기에 처음 등장한 분청사기 스타일의 달항아리를 제작합니다. 분청사기 달항아리는 백토 용액에 그릇을 담그는 작업입니다. "이 과정에서 재미있는 일이 많이 일어납니다. 때때로 슬립이 표면으로 흘러내리기도 하죠."라고 그는 영상에서 말합니다. "때로는 도자기에 스며들기도 하고 건조 과정에서 모양 자체가 약간 일그러질 때도 있습니다."

최보람 작가는 한국 전통 도자기의 대부분이 단순한 형태와 매끄러운 질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녀는 물레를 사용하지 않고 작은 흙 덩어리를 반죽해 기본적인 마름모꼴로 빚은 뒤, 이를 한데 뭉쳐서 그릇을 만듭니다. 그녀는 전통적인 항아리 모양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유약을 바르지도 않습니다. "대신 표면에 무작위 선으로 이루어진 패턴을 추가합니다."라고 그녀는 영상에서 말합니다. "대부분의 패턴은 일련의 연결된 선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고대의 상징적인 달 항아리는 새로운 시대마다 계속해서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모양을 바꾸고 있는 것 같습니다.

 


[원본 출처]

 BBC, "Why Korea's moon jar is so iconic", 2023년 5월 11일

 

Why Korea's moon jar is so iconic

The ancient symbol came to stand for Korea's post-colonial national identity. Now a new generation of artists are re-interpreting this iconic sculptural form, writes Clare Dowdy.

www.bbc.com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