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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 #2] 백자항아리의 특징과 변천 : 15 ~ 16세기

데이타베이스/문화

by TOS_lab 2023. 7. 6.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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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백자는 불교적 색체의 고려시대 청자와 비교하여 유교 문화를 상징하는 대명사로 흔히 일컬어진다. 신흥 왕조의 주체세력인 성리학자들의 내면 정신세계가 순백자에 투영되어 나타났다고 할 수 있으며, 조선백자의 대부분이 그러하듯 항아리 형태 면에서도 신흥 왕조의 활기찬 기풍을 반영하듯 전체적으로 기운이 넘치면서 당당한 형태의 순백자 항아리가 만들어졌다. 

 

[그림 1] 백자 항아리

 

[그림 1]의 "백자 항아리"는 입구는 외반하면서 끝이 말려있고 어깨 부분이 둥글게 팽창되었다가 아래로 내려오면서 좁아지는 입호 형태다. 이와 유사한 형태의 항아리로 뚜껑을 갖춘 [그림 2]와 같은 "백자 항아리"가 있다. 뚜껑에는 보주형의 손잡이가 달려 있으며 손잡이를 중심으로 얕게 2단의 동심원이 형성되어 있다. 굽 안 바닥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음각문이 있다. 이 항아리를 볼 때 [그림 1]의 항아리도 동일한 형태의 뚜껑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용도에 대해서는 술과 같은 액체를 담았거나, 곡식을 저장하는데 사용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지만 명확하게 알 수 없다. 

 

[그림 2] 백자 항아리

 

15 ~ 16세기 조선백자에 있어서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변화는 청화백자의 제작이다. 청화백자는 회회청(回回靑)이라는 안료로 도화서(圖畵署)의 화원(畵員)이 직접 명을 받고 도자기에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이 시기 청화백자는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현재 전하는 청화백자 중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청화백자항아리인 것을 보면, 청화백자호가 청화백자의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나나는 대표적인 기종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조선 청화백자항아리를 살펴보는 것은 조선 청화백자를 이해하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 이 시기에는 몸체가 긴 형태의 입호와 키가 낮고 몸체가 원형을 이루는 원호의 기형이 모두 만들어졌는데, 원호의 예는 극히 적고 의례기로서의 성격이 강한 입호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입호의 유형도 몇 가지로 구분되는데, 그 한 유형으로 "백자 대나무 소나무 무늬 항아리[그림 3]"는 높고 직립한 입구 바로 아래 어깨 부분에서 최대로 팽창하였다가 급격히 좁아지다가 저부에서 반전하여 높은 굽으로 이어지는 형태다. 전체적으로 키가 크고 세장한 것이 특징인데 몸체의 형태나 곡선은 고려청자나 분청사기로 많이 만들어졌던 매병(梅甁)의 기본형과 거의 같고 다만 높은 입구와 굽다리가 달린 점이 다를 뿐이다. 이러한 형태의 조선백자 항아리를 고려시대와 조선 초 분청사기까지도 많이 만들어지던 매병이 사라지면서 조선적인 호의 형태로 흡수-변화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과도기적인 형태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 항아리는 홍치2년, 즉 1489년의 연대를 가지고 있어 15세기 후반의 양식을 잘 보여준다.

 

[그림 3] 백자 대나무 소나무 무늬 항아리

[그림 4]와 같이 <백자 매화 대나무 새 무늬 항아리>는 높고 안으로 약간 기운 입구를 가지고 있으며 어깨는 비스듬히 벌어지면서 팽창하였다가 서서히 좁아지면서 저부 근처에서 살짝 반전하였다가 다시 꺾여서 바닥에 이어지는 형태다. 앞의 홍치2년명 항아리에 비하면 높은 굽다리가 없으며 키가 더 낮은 형태를 지닌다. 보주형(혹은 연봉형)의 꼭지가 달리고 가장자리가 외반되면서 말린 형태의 뚜껑이 세트를 이루고 있다. 보주형의 꼭지 주변으로는 대나무 매화를 그렸으며 항아리 한편에는 매화나무 위에 앉은 새를, 다른 편에는 대나무 한 그루를 힘차게 그려 넣었는데 당시의 회화와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다. 국보 170호 청화백자항아리의 형태와 문양이 거의 유사한 <백자 매화 대나무 새 무늬 항아리[그림 5]>는 뚜껑이 없고 몸체가 좀 더 길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그림 4] 백자 매화 대나무 새 무늬 항아리(왼) / [그림5] 뚜껑이 없는 백자 매화 대나무 새 무늬 항아리(오)

 

 

입호의 유형 중 입구가 외반되어 말리고 어깨에서 팽창하였다가 거의 사선을 이루며 좁아져서 바닥에 연결되는 형태의 것이 있다. 같은 시기 분청사기나 상감백자로도 다수 제작되었으며 청화백자로는 소형의 항아리들로 만들어졌는데 [그림 5]의 <백자 매화 대나무 무늬 항아리>도 여기에 속하는 형태다. 문양 장식 면에서도 아직 어깨와 굽 주위에 종속 문양대가 남아 있어 회화적인 단계의 청화백자로 이행하는 과도기의 유형으로 볼 수 있다. 

[그림 6] 백자 매화 대나무 무늬 항아리

 

조선백자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청화백자 이외에도 고려시대의 전통적인 도자기 장식기법인 상감으로 제작된 상감백자항아리도 있고 청화안료로 장식한 철화백자항아리도 전하고 있다. <백자 연꽃넝쿨 무늬 항아리[그림 7]>는 입구 부분이 말려있고 굽다리는 높은 편인데 앞의 순백자, 청화백자의 입호와는 형태가 다른 키가 작은 편으로 오히려 원호에 가까운 형태다. 항아리의 최대 몸체지름이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데, 상감백자항아리 중에는 [그림 8]과 같은 입호 형태의 항아리도 제작되었다.

 

[그림 7] 백자 연꽃넝쿨 무늬 항아리

 

 

[그림 8] 백자 연꽃넝쿨 무늬 항아리

철화백자항아리는 코발트 안료의 대용으로 16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전반까지 만들어졌지만 특히 17세기 전반에서 후반에 걸쳐 다양한 철화 문양의 항아리들이 제작되었다. 16세기에 만들어진 철화백자항아리는 많지 않지만 간혹 눈의 띈다. <백자 매화 무늬 항아리>는 도툼하게 외반한 입구를 지니고 있으며 풍만한 어깨에서 서서히 좁아지면서 굽에 이르는 이 시기의 전형적인 항아리다. 어깨 부분을 중심으로 매화 무늬가 철화로 장식되어 있는 높이 7cm 가량의 작은 항아리다. [그림 9] 항아리의 몸체를 화폭 삼아 몰골법의 필치로 그려진 매화나무는 일부 번진 곳도 있어 운치를 더해 준다. 앞의 [그림 6]의 청화백자항아리의 회화 장식과 흡사한 느낌을 주는데 단지 안료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림 9] 백자 매화 무늬 항아리

 

회화적인 문양을 소재로 한 백자항아리에는 <백자 대나무 매화 무늬 항아리[그림 10]>도 있다. 이 항아리의 입구 부분은 보수되었는데 끝이 말리면서 외반하고 있고 문양을 구성하는 방식, 종속문양의 형태나 입호인 것은 17세기 철화백자용준과 유사하지만 몸체는 훨씬 더 풍만하면서도 당당하다. 매화와 대나무를 사실적으로 그린 주문양은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킬 만큼 회화적이며 이 시기 조선시대 회화를 감상하고 있는 것 같다. 이 항아리는 17세기 중에서도 아주 이른 시기이거나 16세기 후반경에 제작된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림 10] 백자 대마누 매화 무늬 항아리

 


[원문] 국립중앙박물관, "백자 항아리 - 조선의 인과 예를 담다", 2010.6, p 8 ~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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