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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 #1] 백자항아리의 특징과 변천 –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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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S_lab 2023. 7. 6.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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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백자항아리 - 조선의 인과 예를 담다", 2010.6.15, p 7

 

조선백자 항아리는 접시-대접-병 등과 함께 조선시대 백자 중에서 많이 만들어진 그릇[기명(器皿)]의 하나로 제작시기와 사용목적에 따라 그 형태와 특징도 다양하다. 고려청자에서는 항아리의 비중이 낮은 데 비해, 조선시대에는 항아리가 전 시기를 통해 가장 많이 만들어지면서 가장 중심적인 기종이 되었다. 유교를 국가이념으로 표방한 조선은 국가적 의례를 중요시하여 의식 절차를 기록한 "오례의(五禮儀)"를 편찬하였으며, 이에 필요한 공예품 제작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따라서 제례(祭禮)에 쓰이는 제례기(祭禮器)가 큰 비중을 차지하였으며 의례용으로 용이 그려진 항아리인 용문호(龍文壺), 즉 용준(龍樽)이 특별히 제작되어 제사나 궁중 대소 연회(宴會)에 쓰이는 술을 담거나 잔치에서 꽃을 꽂는데 사용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조선백자 항아리는 서민의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물이나 젓갈, 잡곡, 간장, 된장, 고추장 등과 각종 양념 등을 담는 일상용기(日常容器)로도 만들어졌으며, 왕가(王家)의 태()를 담는 태항아리(胎壺)나 사후의 생활을 위한 명기(明器)로도 제작되었다

 

다양한 용도로 만들어진 백자항아리는 시대에 따라 기형에 변화를 보일 뿐 아니라, 시문(施文)된 안료(顔料)와 문양 등에서도 다양한 특징과 변화를 보이고 있다. 조선백자를 종류별로 살펴볼 때 흔히 문양을 장식하는 기법 및 안료에 의해 구분을 하는데 항아리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아무런 장식이 없는 순백자(純白磁), 상감기법에 의한 상감백자(象嵌白磁), 청화안료로 그림을 그린 청화백자(靑畵白磁), 철화안료로 그린 철화백자(鐵畵白磁), 산화동안료로 장식한 동화백자(銅畵白磁)가 있으며 순백자에 음각, 양각, 투각 장식을 가미한 백자항아리도 만들어졌다. 다양한 기법 및 안료로 장식한 문양은 대표적으로 매난국죽(梅蘭菊竹)의 사군자문(四君子文) 매화와 새를 그려 넣은 화조문(花鳥文), 연꽃, 모란을 소재로한 연화문(蓮花文), 모란문(牡丹文), 당초문(唐草文), 용과 구름으로 장식한 운룡문(雲龍文), 산수화를 옮겨놓은 듯한 산수문(山水文), 복을 기원하고 장수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수복문(壽福文), 십장생문(十長生文) 등이 있다.

 

조선시대 백자항아리는 크게 입호(立壺)라고 불리는 형태와 원호(圓壺) 혹은 구형호(球形壺)라고 불리는 형태로 구분된다. 이러한 구분은 외형상 형아리 몸통의 무게중심이 어깨 부분에 있고 장신(長身)인 형태를 입호라고 하고 무게중심이 몸통의 중앙에 있어 외견상 구()나 원()과 같이 둥글게 보이는 특징으로 구분한 것이다. 특별히 원호 계열 중에서 17세기 후반 ~ 18세기에 많이 만들어진 대형의 원호 항아리를 달항아리라고 부른다. 세부적으로는 항아리의 주둥이, 즉 입구가 직립하거나 말린 형태로도 구분할 수 있는데 15 ~ 16세기의 형태는 밖으로 밀렸거나 안으로 숙여 세워진 여러 형태의 항아리가 만들어졌고 18세기부터 목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높이가 생기면서 직립되고 19세기에는 그 부분이 더욱 높아지게 된다. 입호와 원호 외에 각이 진 항아리도 만들어졌다

 


[원문] 국립중앙박물관, "백자 항아리 - 조선의 인과 예를 담다", 2010.6, p 6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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