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와 깊게 팬 주름에서 부부가 함께해온 세월이 느껴진다.
함께 산책을 나와 거리를 걷다 봄을 맞이하여 활짝 핀 길가의 꽃을 한 송이 꺾어 수줍게 부인에게 전달한다.
노년의 부인은 인자하고 밝은 미소로 그에게 화답한다.
언제가 여자친구(현재는 부인이 된)가 이런 사진을 보내면서 "우리도 이렇게 사랑하자"라고 암묵적 동의를 요청했다.
과연 동의해야 하는가?
"이렇게 사랑하자~"에는 다음의 내용이 전제로 붙는다.
우리 결혼하자~
결혼을 결정하기 전 다음의 상황을 평가하고 판단해야 한다.
1. 결혼이 서로의 행복을 증진시키는가?
2. 우리의 일련의 행동과 대화 패턴,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 등을 봤을 때 향후 발생하는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가?
결혼 후의 비전이 "우리도 이렇게 사랑하자"이면 결혼 후에 어떤 걸 해야 하는가?
1. 사진은 80대 후반으로 보이는데 자세가 바르시네
- 결혼하면 일주일에 3번은 부인과 같이 운동해야 저 나이대가 되어서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겠지?
2. 노년에는 사랑보다는 우정일까?
- 나이가 들면 체력도 떨어지고 호르몬도 변화하는데 노년에도 30대 초반의 내가 느끼는 사랑과 동일할까?
- 같이 밥상에서 밥 먹을 때 "저 인간 잘도 처먹네"라는 생각이 들면 사랑도 끝난 거라는데..
- 같이 살아온 추억을 되새기는 건 사랑일까?
3. 추억을 되새기기 위해서는 평소에 어떻게 해야 하지?
-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말을 되새겨야겠지?
- 나는 상대방이 이상한 이야기하면 못 참는데 지금의 여자친구 말을 잘 참을 수 있을까?
4. 우리에게 의도하지 않았던 큰 문제(부모님의 아픔 등)가 발생해도 평상심을 유지하면서 추억을 쌓을 수 있을까?
- 어떠한 문제는 시간과 돈으로써 해결되므로 적정 수준 이상의 돈을 벌고 항상 예비비를 모아두어야겠지?
- 그렇다면 여자친구는 현재 지출과 돈 관리를 이런 관점에서 하고 있나?
수많은 시나리오 중 내 힘으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몇 개나 있을지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는지 고려해야 한다.
예측은 불확실이라는 위험을 항상 가지고 있다.
그러면 혹시 상대방을 다른 사람으로 대입하고 다시 위의 상황을 모두 고려해 본다.
이 사람을 통해야 "불가능"에서 "희박하지만 가능함"이라는 결과가 도출된다.
드디어 답변할 수 있다.
"당연하지"
우리는 법적으로 부부가 되었고, 하나의 법적 의무와 권한을 부여받았다.
이제부터 우리가 한 쌍의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노년의 부부가 되기 위해서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주체성을 가지고 비전을 위해 해야 하는 일은 생각보다 제한적이다.
그것보다는 우리의 통제범위 바깥에서 우리의 목표를 시험하고 선택을 강요한다.
이는 필히 선택에 따른 대가를 남기고 이런 선택 중 일부는 "너와 함께라면..."이라는 파트너쉽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힌다. 우리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우리의 비전은 사라진다.
노력으로만 불충분하다는 걸 깨닫기 전에 먼저 신에게 기도할 필요가 있다.
"바라고 바라건대... 내 삶의 마지막이 저 사진과 같이 되도록 저를 보살펴 주세요"
신은 주관식 서술형 질문으로 답을 준다.
"고난을 줄께. 바라고 바라건대...가 진짜 바라는 것이냐?"
고난은 항상 우리를 시험한다.
우리 앞에 놓인 선택지 중 대부분은 트레이드 오프를 가지고 있다. 단지 그 선택지를 선택함으로써 감내해야 되는 불이익은 우리 공동 비전의 훼손이다.
일부 훼손되었다고 비전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첫 선택은 두 번째, 세 번째 잘못된 선택을 쉽게 용인하고 결국에는 비전은 사라지고 만다.
비전이 사라진 후 신이 시간을 돌려준다고 하면 어느 순간으로 간다고 할까?
"상대를 만나기 전"이라면 내가 바라고 바라던 건 위의 사진이 아니었을 거다.
"첫 선택을 하기 전"이라면 비전에 대한 미련과 본인의 아둔함에 대한 후회일 거다.
현실에서 시간은 돌릴 순 없으므로 우리는 선택하기 전에 이 선택이 우리의 비전에 합당한지 고민해야 한다.
우리의 비전은 숙고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노력과 실수, 그리고 반성과 현명한 선택이 여러 번 반복되고 나서야 비전은 완성된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완성된 비전 앞에는 깊에 팬 주름과 하얗게 머리가 센 노부부만 존재하겠지만
그 노부부는 누군가의 감동과 희망으로 회자되지 않을까?
스타트업의 탄생과 생존, 그리고 성공은 어찌 보면 부부의 탄생과 행복한 결말과 닮았습니다.
힘들지만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고 싶다면 회사를 설립해야 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팀은 모두가 그 문제에 공감하고 서로가 서로를 믿고 신뢰할 수 있어야겠죠.
스타트업의 팀원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도 벅찬 상황에서 예상치도 못한 문제가 터지기도 합니다.
경쟁사가 팀원을 뺏어갈 수도 있고, 협업했던 기업이 기술을 뺏어갈 수도 있습니다. 갑자기 돈이 벌리기 시작하니 팀원들이 돈에 혹해 소송을 걸 수도 있죠.
이런 상황에서 스타트업의 의사결정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우리는 우리가 목표로 했던 비전에 근거해서 의사결정을 해야 합니다. 그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팀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니까요.
너무나 힘들 경우에는 내가 왜 이 일을 하지 한번 떠올릴 필요가 있죠.
아무리 힘들어도 그 당시로 돌아가면 또 이 결정을 할 거란 걸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다시 힘을 내서 한 발 내디딜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 문제를 해결한 후에 어떤 모습일까요?
그 문제를 해결하기까지의 회로애락이 담긴 여정에 대한 추억과 팀원 간의 끈끈함.
그리고 새로운 도전자의 귀감이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 모든 여정을 위한 첫 단계는 내가 "바라고 바라던 것"에 대한 자신의 믿음이고요.
업무를 하다 보니 별생각이 다 들어 오늘도 뻘 글을 남긴 틴지오브소울의 맥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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